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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엿본 골프장 풍경

장보고투 2008. 7. 10. 23:16

골프장에 가는 모습을 스케치 한다면
정장을 차려입고
화장을 곱게 하고 집을 나서며, 썬블럭 짙게 바르고
환장을 해서 달려가고
치장을 하고 가는데 불편함을 감수하고 귀걸이며, 목걸이며 너덜너덜 매달고 간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고 더 화려하게 과감히 입고 나온 옷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목욕탕에 들어가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간다.
가면과 가발도, 화장기도 다 지우고 생얼(화장 안한 맨 얼굴)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성형 수술 한 것은 잘 안 나타는 것 같다.

골프장의 목욕탕 문화는 일본과 중국, 태국과 한국에만 있다.
외국 골프장의 목욕 시설은 샤워장이 대부분이다.
그린 주변에서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간 사람들은
목욕탕 안에서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피로를 푼다.
어떤 동호회에서는 버디를 못한 사람은 샤워만 하기로 내부 룰을 정해 놓고
버디 못하면 탕에 못 들어오게 하는 곳도 있다.

목욕탕이라는 곳은 모두가 공평해지는 장소인 것 같다.
나라마다 아주 특이한 목욕탕 문화가 있다.
일본에도 한 때 남녀 혼탕이 있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춰 시골에나 가야 겨우 한두 개 있을까 말까라고 한다.
유럽의 목욕 문화는 거의가 남녀 혼탕에 가깝다. 사우나에 가면 타월은 엉덩이와 발에 까는데 사용하고 몸을 가리지 않는다. 남녀가 자연스레 훌렁 벗고 들어오는데 놀란다.
독일의 SEEDAM BATH 라는 2,000명이 입장할 수 있는 사우나에 가면, 전 세계에서 모여온 사람들이 누드로 사우나를 즐긴다.
뉴질랜드에 갔더니 금요일 오후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누드로 공용 온천 수영장에서 수영과 온천욕을 즐기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필드에서의 샷을 되새김질 하는 19홀 클럽하우스에 가기 전, 목욕탕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대략 이런 소리가 들린다.
“오늘 잘 쳤어?”
“얼마 먹었냐?”
“왕창 깨졌냐?”
“다 털리고 지갑 거덜났다며?”
“오늘 몇 타나 쳤냐?”
“몇 홀이나 먹었냐?”
주로 이런 이야기이다.

대답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오늘 되게 안맞더라구”
“진짜 오늘 골프 안되네”
“오늘 죽썼다”
“골프 그만 두던지 해야지, 완죠니 망가졌다”

바람 탓에, 연장 탓에, 동반자 구찌 탓에, 캐디가 거리 잘못 불러줘서 그렇다고 캐디 탓에,
아무튼 자기 탓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 것 같았다.
어제 술을 너무 늦게까지 많이 마셔서, 잠을 설쳐서, 길이 밀려 늦어서 곡예운전을 하느라 스트레스 받아서, 새로 산 채가 손에 익지 않아서 등등 골프는 핑계도 많다.

동반자들의 잘록한 허리나 근육질로 단단한 하체와 어깨, 가슴 근육을 보면 한결같이 부러운 눈으로 올려다본다. 이는 거져 된 것이 아니라 운동과 자제로 이루어낸 것인데!
공통점은 배둘레햄(?)으로 몸맵시가 안 나는 친구들에게는 언급을 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허리가 굵은 선수도 장타를 때려낸다는 것이다.

요 근래 일부 골프장들은 골프슈즈 슬쩍 문질러주고 라카 키 열어 주고 봉사료로 2~3,000원을 받는 골프장들이 생겨났다.

몸의 땀과 때를 씻고 잘못된 샷을 지우고 나오는 골프장의 목욕탕이 아니라,
내기 골프의 결과를 앞, 뒤 팀과 확인 하는 대화가 거의 전부인 것이 씁쓸하다.

내가 알아들은 외국 골프장 샤워 룸에서 들리는 소리는
“재미있었습니까?”
“잘 즐기셨습니까?”
주로 이런 내용이었는데...

희망을 안고 갔다가 실망하고 오는 것이 골프이기에 그런가보다.
노름판과 골프장에서는 돈 딴 사람보다 잃은 사람이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카지노 운영 회사와 딜러, 골프장 클럽하우스와 캐디의 지갑만이 두둑해지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은 여자들은 목욕탕에서 이야기를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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